글로 표현 못하는 진심 (성경의 문맥)

     


글은 표현에 한계가 있습니다.
표현이 어려운 부분이 많은 데 그중
말로 하는 말투, 음성의 고저, 빠르기, 강약
얼굴의 표정, 눈짓, 입술의 일그러짐 …
이런 것들이 미묘한 진심을 표현하는 데 글로 표현이 어렵습니다.
문맥을 앞뒤로 파악해야 그 의미가 이해됩니다.

시, 소설 등은 언어의 귀재 문인들이 기막히게 글속에 포함시키는데
법정 기록, 녹취록 같은 것은 그게 어렵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글로 표현이 어려운 속마음이나 감정이 숨은 것들이 보입니다.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 앞에서 한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1)
이스라엘 왕(아합)과 유다 왕(여호사밧)은 아람과의 전쟁을 앞두고
선지자들에게 전쟁터인 길르앗 라못으로 가면 승리를 할 것인가 묻습니다.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의 말.
[열왕기상 22:15-18]
15 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저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저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16 왕이 저에게 이르되 내가 몇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
17 저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18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승리을 얻는다고 말을 해주는데
“어찌하면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
아합 왕은 불길한 거짓 예언을 한다고 짜증을 냅니다.
아합 왕은 선지자 미가의 말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미가야의 말은 반어법입니다.
반대로 말한 것이지요.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해입니다.
뒤의 말을 읽어 보면 압니다.
[열왕기상 22:17]
저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그냥 글만 읽으면 열왕기상 22:15절, 17절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서로 반대되는 말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어법으로 말할 때는 눈짓, 표정, 입술 모양, 몸짓, 말투, 분위기
이런 것들이 하고 있는 말이 반대인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것이 글로는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아마 운율, 높낮이, 박자를 넣어서 냉소적인 표정으로
“아-하.하.하. 오-올-라가-아-서 승리를 어-어-드-소-서”
이렇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제 상상)
문맥을 읽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아합 왕은 그 의미를 곧 알아 차렸습니다.
그런데도 전쟁에 나가서 전사를 합니다.

(2)
요나서 4:2의 요나의 말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결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이 아닙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말입니다.

요나는 입이 부은 소리로 불평불만을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문맥이 당연히 그것을 말합니다.

[요나 4:1,2]
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울.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말렉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모든 것을 진멸해야 하는 데 재산이 탐나서 소와 양 그리고 아말렉 왕을 잡아 왔습니다.
(사무엘상 15:10-31)

하나님도 실망하셨고 사무엘은 화나서 사울이 왕의 지위를 잃었다 말하고 돌아갑니다.
이 때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의 겉옷 자락을 잡습니다.
얼마나 꽉 잡았던지, 사무엘이 이것을 얼마나 뿌리치려 했던지 옷자락이 찢어집니다.

[사무엘상 15:27]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상 15:30,31]
30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울 왕이 선지자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아마도 눈을 부릅뜨고 울부짖는 위협적인 소리로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하면 너를 죽이겠다는 위협적인 느낌을 준 것 같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늙은 사무엘 선지자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글로 표현이 안 됩니다.

다음을 읽어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라고 했을 때에
사울 왕이 그것을 들으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두려워합니다.
앞에 말한 사무엘상 15:27-31 에서 매우 심한 위협을 한 것이 틀림없지요.
글로는 표현이 안 되는 상황.
문맥으로만 미루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문맥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합니다.

[사무엘상 16:2,3]
2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나는 요한계시록 에 나오는 짐승의 숫자를 풀어보라는 말도
글이 아닌 말로 한다면 반의적으로, 냉소적으로 말 한 것이라 생각 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짐작)

[요한계시록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그러니까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사람은 한번 풀어 봐라.
틀림없이 못 풀 것이다”
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지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문맥상으로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백이면 백 다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듣는 사람들이 “그런가?” 하면서 넘어가는 것을 보면.
“한 번 해봐라. 못 풀 것이다”라는 뜻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는 “로마 황제(네로)”를 숫자로 풀었다고 하고. 라틴어 인가? 헬라어인지?
(이걸 말하는 사람은 유행에 뒤떨어진 사람?)

누구는 “바 코드”라고 하고, 누구는 “베리 칩”이라고 하고,
요사이는 QR Code가 나왔는데 누구는 이것이라고 할지도…

시대에 따라, 나오는 신기술에 따라 해석이 마구 달라집니다.
앞으로는 “666”이
“AI 및 통신 Protocol이다“라는 말도 나옴직 합니다.
”정보를 통제한 Big brother의 상징이다“라는 말도 나옴직 하구요.
(이것의 설명은 쓸데없이 복잡합니다)

지금은 누구나 Smartphon 없이는 불편해서 못사는 시대.
(
2015년에 아프리카 탄자니아 선교지 교회에 갔습니다.
주일학교 예배시간에 현지 교우들이 Smartphon으로 동영상 찍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간 나는 폴더폰만 가지고 있던 거지요.
미국 돌아와서 당장 Smartphon을 사고야 말았습니다.
)
물건 사는 거래도 Smartphon으로합니다.
Amazone에서 물건사기도 Smartphon.
Smartphon에는 고유번호(IMEI)가 있습니다.
Smartphon의 고유번호(IMEI)가 666 이라고 하는 사람은 안 나올까요?

그러니 666의 해석은 다 틀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문맥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기의 선입관으로 상대의 말을 듣기가 너무 쉽습니다.
자기의 선입관으로 책이나 글을 읽기가 매우 쉽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뇌가 원하는 대로 인식 해석하는 것이 우리가 보고 듣는 것입니다.
(당연히 편견, 선입관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문맥에 주의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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