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문맥 (물과 성령으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이다.

(요한복음 3:3-5)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한복음 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 시작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이다.

오늘날 믿는 사람은 많이 들어서 이해가 안 되도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는데
구약의 약속을 따라 살던 니고데모는 이해가 안 될 수 밖에 없다.
사실 현대의 불신자들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계속 말하니
그런 비상식적인 말을 한다고 한편으로 제쳐놓고 종교적인 개념이려니 생각할 것이다.
(다른 종교에도 선문답이 많으니까)

니고데모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되서 다시 질문한다.
(그는 진실하고 진지한 사람이다. 뭔가 예수님께 있다는 것은 알고있다.)
“늙어서 어떻게 또 태어나요? 엄마 뱃속에 또 들어갔다 나올 수는 없잖아요?”
예수님이 좀 더 설명을 해 주신다.

요한복음 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런데 오늘날 믿는 우리들이 생각하기에는 더 어려워지고 말았다.
예수님이 우리가 헷갈리라고 이렇게 대답하셨을 리 없고 뭔가 확실히 가르치려 하신 것 같은데?
우리가 아니고 니고데모를 가르치려고 하시는 데 성경 읽는 오늘날 우리가 헷갈린다.

그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난해 구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유명하신 분마다 해석들이 기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책 안 읽는 나는 누가 뭐랬는지 모른다. 앞으로는 좀 읽어야 할 텐데…)

일단 요약하면…
“거듭난다”=“물과 성령으로 난다”
라는 뜻이 된다. 이해가 더 어려워졌다.
“성령”만 말해도 어려운 데 “물”이 들어가서 더 어려워 졌다.

어려우니까 잠깐 그냥 지나가고 다음의 구절을 읽어본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이해하려하면 무리가 따른다.
(베드로후서 3:16) 에서 말하는 억지 풀기가 되기 쉽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두고 다음의 구절을 계속 읽는다.
(요한복음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한복음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 어머니 뱃속에서 아무리 많이 태어나도 그것은 육(肉)이다.
자연적인 생명, 생물학적인 생명 그게 육신의 생명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가 없다는 말씀임을 이해할 수 있다.
(
여기서 유명 기독교 저술가, 설교자, 목사들이 사람을 혼동 시켰다.
예를 들면 “육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 어쩌구저쩌구 하면 매우 헷갈린다.
뭔가 멋있고 신비한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런 책들을 성경보다 우선하여 믿는 것인지 원.
성경은 어렵고 비밀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나?
)

성령으로 난 것은 영”성령으로 난 것이 영(靈)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로 간다 는 뜻.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성령으로 난 것” = “거듭나는 것” 이란 말이다
3, 5, 6, 7 절을 비교한다.
“3절 거듭난다”=“5절 물과 성령으로 난다”=“6절 성령으로 난다”=“7절 거듭난다
그래서 공통점을 찾으면 (수학에서는 인수분해라고 하나?)
거듭난다”=“성령으로 난다로 범위가 좁혀진다.

그러면 “성령으로 난다”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성령으로 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육신(肉身)으로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서는 10 번 태어나도 거듭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생물학적인 생명은 10 번 태어나도 거듭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요한복음 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
여기서 성경을 선입관을 갖고 읽은 사람은 퍼뜩 생각한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했듯이 마음에 불을 받고 뒤집어지는 것이 성령으로…?
그러니까 성령세례, 마가의 다락방 기도원, 불 받아야지… 등등의 말이 나왔지.
펄펄 뛰며 신비주의 경향으로 빠진다.

나쁘다는 것은 슬쩍 봐도 뻔히 알겠는데 딱히 잘못이라고 할 성경적 근거를 찾지 못한다.
성도들이 성경을 주의 깊게 진지하게 안 읽었고
자질 미달의 소위 주의 종들이 사람들을 그릇된 신앙 지식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하게 된다.
)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누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는가?
하나님의 자녀, 아들, 딸이면 당연히 들어간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 아들, 딸이 되는가?

3장에 오기 전에 요한복음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요한복음 1:12,13 에 달리 생각할 수 없이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영접하는 자) = (그 이름 믿는 자) 에게 (하나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심)
이 방법은 (혈통 No), (육정 No), (사람의 뜻 No) 이고 (하나님께 난 자 Yes) 란 말 아닌가?
즉,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 예수님을 믿는 자)(하나님의 아들, 딸) 인데
이것은
육(肉)의 방법 (혈통, 육정, 사람의 뜻)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께 난 자) 란 말 아닌가? 즉 거듭났다는 말이 아닌가?

육신(肉身)으로 한번 태어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한 번 더 태어나고(거듭 나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니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내가 더럽든 추하든 절름발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
그게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 거듭나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유대인 니고데모는 율법에 쩌들고쩌들은 사람이기에 이렇게 설명해야 했다.
(물론 그는 진실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율법을 준수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수 천 년 간 뇌리에 배어 있고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세상에서 구원하여 강한 민족으로 만들 분, 하나님께 인도할 분이었기에
세상 만민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는 분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이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씀하셔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복음에 사는 우리는 그냥…”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충분하고 우리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과 나의 구세주로 믿었다.

요한복음의 첫째 대상인 헬라 문화권의 이방인들에게는 거두절미하고 처음에 선언한 요한복음 1:12,13 이면 충분한 것이다.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 없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면 된다.
그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 다시 태어나는 것, 거듭나는 것이다.
아- 답답하다.

2000년전 유대인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 하신 설명이
현대의 비 유대인인 우리는 이해가 안 되니까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상한 해석을 무리하게 하게 되고 신비주의 성령파(?)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듭난다, 성령으로 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와 같은 말이다.

바로 얼마 다음 구절에서 직설적으로 쉽게 선언하시었다.
요한복음 3:16의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와 같은 말이다.

또 선언하시기를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의 말씀 = 영(성령)” 이시니까
성경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의지하여 믿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시편기자도 주의 말씀을 가장 높이셨다고 하지 않는가?
(시편 138:2하)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이 믿는 것이다.
(누가복음 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성경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
그게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자기의 선입관 편견으로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말씀을 미음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것도 같은 요한복음 앞뒤에서, 여기저기에서.

여기까지 내용을 생각해 보면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이리 저리 돌려 말한 것이 된다.
논리란 것이 그런 것이고 어느 때는 불필요한 것이다.
그냥 “몰라몰라. 난 성경에 있는 대로 그냥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래”
그러면 간단하다.
복 받은 믿음의 자세이며 주님께서 축복하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다.
더 이상 복잡하게 이말 저말 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운 믿음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
뭔가 신비한 것 있는 것아니야?
내가 그것을 알아 봐야지.
초대교회 때처럼 성령이 불꽃같이 임하거나
최소한 마음이 뜨거워져서 완전히 뒤집혀져야 하는 것 아니야?
이렇게 자기의 선입관으로 여기저기를 같은 내용을 문맥에서 떼어내어 연결하여 나의 추론에 맞추면.
이상하게 된다.
일단 그렇게 되면 성경 앞뒤의 문맥은 싹 무시하고 자기 생각에 빠저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면 이제는 성경 문맥의 흐름이고 뭐고 없다.

사도 베드로의 말대로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의 억지로 푸는 성경이 되는 것이다.
성경을 근거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으면 그냥 숙제로 남긴 채 지나가는 것이 좋다.
언젠가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베드로후서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
여기서 부연 설명을 하면
(요한복음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어머니 뱃속에 10번 들어갔다 나와도 육신으로 난 것이니 그것은 사망에 이르는 육신이다.
이것이 처음 태어나는 것이고 한번 태어나는 것이다.
“거듭난다, 중생(重生)”라고 말고 “다시 태어난다(Born again)” 하면 이해가 좀 쉬워진다.
하나님의 자녀로 한 번 더 태어나야한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1:12,13)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한 번 더 태어나는 것). 그게 Born Again이다.

그리고 그것은 “혈통, 육정, 사람의 뜻 이 아닌 하나님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전에는 엄마 뱃속에서 육신을 입고 태어난 것(처음 태어난 것이며 육으로 난 것이다)
예수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지요(성령으로 난 것), 다시 태어난 것이다.

아마도 옛날에, 성경을 번역할 때 Born Again을 번역할 때.
그것을 중생(重生) 했다 -> 거듭났다 -> 영(靈)으로 났다고 번역 하니까
그럴 듯하고 신비스럽고 해서 신비주의, 영적인(?) 생각과 혼동이 되어 복잡하게 이해한 것 같다.

성경의 부정확한 번역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 중요한 기본적인 믿음을 헷갈리고, 어지럽게 했다.
이점이 매우 답답하다. 그래서 “거듭났다, 중생했다” 이 용어 싫다.
내가 싫어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싫다.

성경 번역 잘해야 하는데 처음 번역한 옛날 분들은 한문 세대라서 그렇다 치고
요즘 번역한 분들은 한글 국어 세대인데 “다시 태어난다, 한 번 더 태어난다”고 번역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어는 “Born Again, 한 번 더 태어난다” 가 아닌가?

자기 말의 바른 개념이 없는 사람은 올바른 믿음의 개념도 전달을 잘 못한다.
최소한 목사님들이 설교 때만이라도
“예수님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한 번 더 태어난다 그게 Born Again이다, 거듭난다(중생)란 말은 좀 이해가 어렵다“
라고 해주면 성도들이 혼동이 적을 텐데.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계속 유식한 척, 신비한 척, 영적인 척 “거듭남”, “중생(重生)” 해대니 자꾸만 사람들이 헷갈린다.
복잡한 말로 구원의 개념이 빙빙 주변만 돌기 쉽다.
육으로 난 것 백번 다시 태어나도 육이다. 하나님께 못 간다.
육신으로 난 것은 엄마 뱃속에서 자연인으로 응애 하고 태어난 것이다.

예수님 믿어,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로 태어난 것이 (요1:12,13) 물과 성령으로 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고 (요1:13) 하셨다.
하나님 자녀니까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 나라에,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게 “거듭나는 것”=“다시 태어나는 것(Born Again)”이다.
)

그러면 덮어두고 왔던 요한복음 3:5의 “물과 성령으로 난다”로 돌아간다.
3, 5, 6, 7 절을 비교한다.
“3절 거듭난다”=“5절 물과 성령으로 난다”=“6절 성령으로 난다”=“7절 거듭난다”
요한복음 3장에서도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5 절에만 나온다.

이“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내용 때문에 이 구절(요한복음 3:5)이 난해 구절이다.
누구는 “물은 세례다” 세례 받아야 구원 받는다.
누구는 “물은 말씀이다”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
누구는 “물은 육신의 생명이다” 엄마 뱃속에서 물과 함께 육신으로 태어나고 또 거듭나야 한다.
그 외에 다른 해석이 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성경 이해 해석의 주먹구구 원칙이 있다.
“성경에서 여러 번 말하면 나도 중요하게 여기고 성경에서 조금 말하면 나도 대충 지나간다“
라는 원칙을 여기에 적용하고자 한다. (Link)

“물”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대충 우물우물 넘어 가겠다는 말이다.
“아니 성경에 있는 내용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기에 나오는 “물”은 어떤 의미인가 조사해 본다.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 이것이 나의 주장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물과 구원이 대하녀 언급한 구절들을 찾아본다.

물 = 말씀(?) 으로 보이는 구절이 에베소서에 한번 나온다.
(에베소서 5:25-27)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의 이 부분은 교회에 관한 내용이지 개인의 구원을 언급했다고 보기 어렵다.
“물=말씀”은 논리의 무리가 있다.

물 = 세례(?) 로 보이는 구절이 베드로전서에 한번 나온다.
(베드로전서 3:20,21)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의 물은 노아의 홍수를 가르치는 말이지 세례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노아의 홍수(물)가 세례의 그림자라는 말이다.
세례가 비유의 본체이고 구약의 노아의 홍수(물)은 그림자라는 말이다.
나의 성경해석 원칙 “그림자와 본체”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물)이 세례의 그림자, 상징이지 세례(본체, 본질)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것”
이라고 하여 개인의 구원과 연관 짓는 데는 문제가 있다.
“물=세례=구원”은 논리상의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물이 주님의 육체와 관련 하여 세 번 나온다.
(요한일서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한일서 5: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복음 19:34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구절은 이해하기가 쉽지않다.
“물=육신적 출생”이것도 그럴 듯하지만 논리상의 무리가 있다.
즉 세 개 중 어느 것도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며.
성경의 다른 곳에 동일한 내용으로 두 번 만이라도 언급이 있으면 좋겠는데
각각 무리가 있는 내용이 딱 한번씩 밖에 없으니…
마치 “원숭이 xxx는 빨개”처럼 연상 논리의 직접 연결과 같은 논리의 오류이다.

그래서 “물”은 잘 모르겠고 우물우물 지나가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더 논리를 전개 시키면
사도 베드로의 말(베드로후서 3:16)대로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의 억지로 푸는 성경이 될 것이다.
성경을 근거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으면 그냥 숙제로 남긴 채 지나가는 것이 좋다.
언젠가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뭐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풀어내는 것을 나는 뭐라지 않을 것이며,
관심도 별로 두지 않을 것이다.
성경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지혜로 여러 가지로 설명을 시도해도 그러려니 한다.
유명한 사람의 지론이 우세할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요한복음 3:3은 …
“사람이 성경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다.

니고데모와 2000년의 시간 차이 및 율법이 똘똘 뭉친 유대인과
율법은 관계없이 예수님을 믿으면 된다고 듣는 비 유대인과는 이해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 니고데모 덕에 간단한 이야기가 복잡해 진 것이다.
그래서 율법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유대인의 시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그렇게 반대를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겨우 이해한 것 같기는 하다.

“물과 성령으로…”이것은 ...
2000년전, 율법주의자 유대인 그리고 진지한 사람인 “니고데모”를 위한 주님의 맞춤형 답변이다.
이것을 현대에 사는 세계 각 민족에게 그대로 이해시키려면 무리가 생긴다.
마치 팔등신 미인에게 꼭 맞는 맞춤옷을 나 같은 못생긴 늙은이가 입는 것 같다.
입기는 입어도 어색하고 웃긴다는 말이다.

꼭 어려운 것을 찾아서 이해하고 싶은 것도 우리 인간의 성향이다.
그래서 억지로 자꾸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해진다.

우리는 2000년 전 율법 아래의 유대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성경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세계 만민을 위한 답변은
요한복음 1:12,13, 요한복음 3:16 등 알기 쉬운 구절이다.
간단하게 요한복음 3:16 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혼동이 없어야 한다.
이상한 소리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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